-
과거, 무성, 실험
가끔 정말 좋다는 감상이 와닿을 때가 있는데, 있지만, 대체로 아예 안 좋지도 크게 좋지도 않다 무언가를 느낀다고 해도 영화 자체가 재미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고전’으로써 그 영화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 영화계에서의 인식 등 메타적 틀에 대한 흥미에 가깝다는 인상, 어차피 앞으로도 각종 콘텐츠 못 끊고 살 테니 섭취해 둬서 나쁠 건 없다는 마음 정도
-
너는 싸웠다 그것이 너의 진정한 모습이다 너는 항상 싸워 왔다
사랑해
다영이에게
-
니 생각 충분히 하고 있다고
내미는 족족 최악의 패, 정답을 정확히 피해 가는 답안, 정도를 꿰고 의도적으로 역행하는 선택들. 도출된 결과를 세차게 뒤집어 버리는 것. 걔는 최선을 다해서 망치고 있다. 가용한 마음을 죄다 끌어모은 채로. “얘는 왜 여기 혼자 가만히 있어요.” 몇 주 전 수족관에 들렀다. 살아 있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생물을 들이면 엄마가 덜 적적해할까 싶어서. “걔는 투어라 그래요. 혼자 둬야 해요. 거울을 보면 지느러미를 펼쳐요. 자기 모습을 보고서 싸우려고 그러는 거예요.” 합사시키면 죽을 때까지 다른 물고기와 싸우는데, 그렇다고 아예 거울을 보여 주지 않으면 지느러미가 말려들어 죽기도 한댄다. “꼭 혼자 두셔야 해요.” 관심을 가졌다고 여긴 직원이 설명을 계속하는 동안 투어는 한 번의 움직임도 없이 홀로 산호초 뒤에 숨어 있었다. 살기 위해 혼자 살아야 한다. 관계된다면 적어도 한쪽은 온전치 못할 것이다. 문득 걔 생각이 났다. 비교적 온순하다는 종 몇 마리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물고기 커뮤니티를 찾았다. 금방 댓글이 달렸다. 작성하신 내용 대부분은 사실이지만 꼭 거울을 보여 줄 필요는 없습니다. ‘난 지금 충만해.’ 플레어링은 본능적인 영역 방어 행동입니다. ‘일거수일투족 훼방을 놓다 보면 언젠가 산뜻해지겠지.’ 건강 관리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자주 지속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도 아주 나쁜 짓들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수컷이 아니라면 합사의 가능성도 없지는……. 물풀 사이로 흔들리던 투어의 붉은 지느러미를 떠올렸다.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원래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거지?*
-
무덤
본인이 다 박살 낸 줄 알고 곱씹기만 하는 사람에게는(애초에 정말로 초연해지고 나면 대단한 인지도 없다) 신물이 난다 싸구려 포장으로 둘러싼 자기애와 작위적인 자기혐오 걍 곱씹고 곱씹고 곱씹고, 연극적인 염세는 적어도 스물 넘으면 정신 차리고 졸업을 좀 해야 할 것 아닌가
-
哈哈哈
인지하되 연민하지 않는 일이 참 쉽지 않다
-
HARD TO GET
혼자 사는 네 꿉꿉하고도 매력적인 집의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던 내 입에서 정작 쏟아져 나온 세 단어는 I love you
-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살아가는 것뿐
“산시 서북의 허자거우에서 왔습니다. 저는 허취안치라고 하고요. 어렸을 때는 다들 샤오치라고 불렀고 나이가 든 이후로는 라오치라 부릅니다.” 사장이 얼른 끼어들었다. “이름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어나니 영원히 쓰러지지 않겠습니다.”
-
적절한 시기의 적절한 결정
그 시절의 삶이 그립냐고? 당연하지,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이었어.
-
어쨌든 내 인생 박살 내고 또 살린 기계에 당신 지분이 있다는 거네
그 세계 안에서 인물들은 종종 고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돌아온 순간의 감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게 반갑고 그리운 마음을 일컫는 거라면 아마 지금 유진이 느끼는 건 고향에 돌아온 감각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익숙한 기분 정도는 느껴질 줄 알았는데. 외곽 경계선을 넘어온 이후 유진은 줄곧 권영주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진은 불현듯 이 땅이 아주 낯설다고 느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지겨워했던 장소는 이제 유진이 모르는 사정으로 가득차 있다. 지난날의 불친절한 이웃들은 어떻게 지낼까. 마지막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곳에서의 삶을 계속하겠다고 했던가, 아니면 어딘가로 향한다고 했던가? 시타델을 떠나던 날 자신은 뒤를 돌아봤던가?
-
지난밤 꿈속에 만났던 모습
글을 쓰는 사람들, 말하는 사람들,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는 (형식과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글 쓰는 일을 전공으로 삼은 친구도 있고 전업으로 활동하는 친구도 있고 본업 새새 좋아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친구도 있다. 그들이 세상에 내놓는 모든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언어를 좋아한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고 그이의 세상을 엿보는 일과 같기에 그렇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건 J인데 이건 친분이나 애정과는 무관한 사안이다. 즐거움도 고통도 제한됨에서 온다; 우리는 원형의 마음을 전할 수 없는 만큼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그 마음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언어를 직조해 가는 과정을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느낀 바 그 행간을 간절히 읽는 사람이 J다.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할지언정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고 느끼기도 하고. 여하간 어떤 페티시적 취향을 관통하는 글보다는 작가가 가진 마음의 일관성이 꽂혀 올 때 관람료를 내고 싶어지는 편인데 J의 글이 그랬다. 요컨대 그 시기 그만큼 부드럽고 정확하게 내 팔을 잡아당긴 작가였다는 소리다. 나는 인생의 변곡점을 시기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는 사람이라 이 발견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J는 실패했거나 정지한 독자(혹은 인물, 친구, 그의 말을 듣는 모두)를 휴식처로 데려가지도 않고 잔인한 합리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같이 주저앉아 대화하고 상영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여태껏 읽어 온 J는 그렇다. 그 대화는 자신의 일이기도 상대와 비슷한 경험의 토로이기도 뭐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도 한데, 일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무언가를 잃은 사람에게는 의외로 아무것도 아닌 게 필요한 편이다. 대체로. 그냥 좀. 대단하지도 평범하지도 당당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것들을 늘어놓을 데가 필요한 것도 같고. 아마 함께 J의 글을 좋아했던 사람들도 근삿값의 마음이었겠지 감히 짐작해 본다. 음…… 쾌도 고도 지나고 나면 진실만 남는다. 당시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어떤 식으로 나를 좌절시켰는지 뭐 그런 것들은 시간에 밭이며 떨어져 나가고 진실만 남는다. 더 이상 일말의 수식도 연민의 여지도 남아 있지 않은, 단지 아주 정확한 경험의 산물, 모든 게 오로지 나의 것.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이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남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다들 이렇게 살 리가 없다. 추하고 막막하고 화나고 슬픈데도 사랑으로 수렴해 버리는 모순을 어떻게 알지. 이 분노는 절반이 맞고 절반이 틀리다. 알 수야 없겠지만 비슷하게들 산다. 이 사실을 알고 여러 가지를 내려놔야 나아갈 수 있는데 나는 이걸 버리는 일이 꽤 어려웠다. 싸구려 나르시시즘, 무게 없는 가짜 시놉시스, 연극적인 자기 증오. J의 글을 읽을 즈음에서야 마지막 쓰레기봉투를 묶었던 것 같다. 물론 몇 년 간 내게 일어난 변화 전부를 J가 만들어 준 것은 아니다(단 한 사람이 그만한 영향을 끼친다면 오히려 경계 요망). 하지만 명백한 반향이 있었다. 당시 나를 붙잡았던 그 이야기들을 지금은 더 이상 나의 것으로 감각하지 않으나 그 사실이 슬프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여전히 소중하다. 충분히 대변되었기 때문에 졸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건보다는 족적에 가까운 종류라 시간이 지나고 J가 나를, 내가 J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게 되더라도 영원히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아까 보내 둔 DM 지금 읽었어. Q. 변하지 않았음을 감각하게 되는 순간은 정확히 언제일까? 어떤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지? A. 내 생각에는 그 조건이 여전히 궁금할 때.
-
생존자 있음 회수 요망
손수 발목 꺾어 놓은 사람이 오나 안 오나 세면서, 그게 대체 뭐 하는 고문인지. 당신도 진짜 인간이 제정신이 아니야.
-
고작
자기 앞을 가로막아 준 연장자가, 태어나서 두 번째였다는 겁니다, 제가요.
-
그래 삶이 바라는 대로 흘러간 적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에
대한
나의 감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감금하고 묶고 장악하고 붙잡고 주물럭거리고 파악하고 조종하고 가두고 포획하고 고문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나의 노동이?
나는 모스맨을 본다 모스맨이 일어남 모스맨을 기록함 모스맨의 날개가 펄럭거림 모스맨이 몸부림침 모스맨을 응시함 모스맨이 벽에 머리를 퍽퍽 내려침 모스맨이 창문으로 다가옴 모스맨이 머리를 갖다 댐 모스맨과 눈이 마주침 내 곁에 모스맨이 있음 모스맨 곁에 내가 있음
access code
-
부서진 빛의 조각들이 입술의 위성처럼 떠돌던
최선을 다해 망쳐 버릴 거야, 손톱을 물어뜯으며 사정없이 못생겨질 거야, 사소한 온 생을 걸고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휘저으며, 드넓어지며, 묵은 이불들이 켜켜이 쌓인 옷장에 숨어들어, 납작해져야지, 조금씩 흩어지다 흔적으로만 남아야지, 베개맡에 감춰 둔 나쁜 낙서들을 베어 먹으며, 이빨이 모조리 새까맣게 변하기를 기다려야지
-
랜선 진통제 전송
30년 전 이맘때, 옛 단원들을 모아 복원 공연을 했었다. 솔직히 시선을 끄는 정도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귀싸대기를 “짜짝!” 때렸다. 공이 울리자마자 무대로 튀어 나가는 복서, 피범벅으로 맹공을 퍼붓는 인파이터였다. 예술이란 치장보다 밥벌이에 대한 치열한 몰두가 이룬 극한의 소리였다.
-
after life
의구심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집어넣은 것들
-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래야 하기 때문
오래전 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 이제 그건 사라져 버렸어. 없어져 버렸단 말이지. 그런데도 나는 울 수가 없구나. 그것에 대해 마음 쓸 수도 없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지.
-
À bout de souffle
계속 찍어요. 우리만 할 수 있으니까.
-
원 비트 메시지
동전 던지기와 같은 두 가지 잠재적인 결과와 상황의 결과를 전달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도와 생각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
실재계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되, 상대를 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응시가 되는 것입니다.
-
환상은 우리가 욕망을 경험하고 구성하는 렌즈다
시각의 영역에서 모든 것은 일종의 덫이다
-
대답은 하나
네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
주파수 93.1MHz가 잡히는 지구는 고독하다
이것을 혁명이자 당신들의 멸망이라 적어 놓겠다 몇백억 년을 돌아서 우주가 녹아 내릴 때 최초의 중력으로 짖을 수 있도록, 모두의 종교와 역사를 대표하도록 /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이 글을 쓰기 전에도 너한테 같이 연기해 보자고 하기 전에도 예전에 소설 써도 되냐고 하기 전에도 내가 연기라는 게 뭔지 나름 정의해 보기 전에도 나는 항상 너를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던 것 같아 네가 나한테 정말 많은 사랑을 크지도 작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사랑을 줬나 봐 우주처럼
-
어쩌면
저는 우정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해요. 저에게 세상은 사막이랍니다. 저는 저주받은 피조물이에요.
-
두 번
어떤 독들은 정말이지 미묘해서 직접 중독되기 전에는 그 성격을 파악하지 못했다.
-
귀가
내 생生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결코 중심이 없다. 길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
-
그러게나 말이야
낭만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
4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
-
10月 30日
과거, 무성, 실험
-
-
-
10月 19日
니 생각 충분히 하고 있다고
-
-
10月 18日
무덤
-
-
10月 17日
哈哈哈
-
-
10月 08日
HARD TO GET
-
-
09月 28日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살아가는 것뿐
-
-
09月 24日
적절한 시기의 적절한 결정
-
-
-
09月 22日
지난밤 꿈속에 만났던 모습
-
-
09月 10日
생존자 있음 회수 요망
-
-
08月 05日
고작
-
-
08月 05日
그래 삶이 바라는 대로 흘러간 적은
-
-
07月 28日
실제
-
-
07月 25日
부서진 빛의 조각들이 입술의 위성처럼 떠돌던
-
-
07月 16日
랜선 진통제 전송
-
-
07月 16日
after life
-
-
07月 05日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래야 하기 때문
-
-
07月 01日
À bout de souffle
-
-
06月 27日
원 비트 메시지
-
-
06月 27日
실재계
-
-
06月 27日
환상은 우리가 욕망을 경험하고 구성하는 렌즈다
-
-
06月 20日
대답은 하나
-
-
06月 20日
주파수 93.1MHz가 잡히는 지구는 고독하다
-
-
06月 12日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
-
06月 06日
어쩌면
-
-
05月 31日
두 번
-
-
05月 25日
귀가
-
-
05月 11日
그러게나 말이야
-
-
04月 30日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