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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꿈속에 만났던 모습
글을 쓰는 사람들, 말하는 사람들,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는 (형식과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글 쓰는 일을 전공으로 삼은 친구도 있고 전업으로 활동하는 친구도 있고 본업 새새 좋아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친구도 있다. 그들이 세상에 내놓는 모든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언어를 좋아한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고 그이의 세상을 엿보는 일과 같기에 그렇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건 J인데 이건 친분이나 애정과는 무관한 사안이다. 즐거움도 고통도 제한됨에서 온다; 우리는 원형의 마음을 전할 수 없는 만큼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그 마음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언어를 직조해 가는 과정을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느낀 바 그 행간을 간절히 읽는 사람이 J다.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할지언정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고 느끼기도 하고. 여하간 어떤 페티시적 취향을 관통하는 글보다는 작가가 가진 마음의 일관성이 꽂혀 올 때 관람료를 내고 싶어지는 편인데 J의 글이 그랬다. 요컨대 그 시기 그만큼 부드럽고 정확하게 내 팔을 잡아당긴 작가였다는 소리다. 나는 인생의 변곡점을 시기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는 사람이라 이 발견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J는 실패했거나 정지한 독자(혹은 인물, 친구, 그의 말을 듣는 모두)를 휴식처로 데려가지도 않고 잔인한 합리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같이 주저앉아 대화하고 상영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여태껏 읽어 온 J는 그렇다. 그 대화는 자신의 일이기도 상대와 비슷한 경험의 토로이기도 뭐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도 한데, 일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무언가를 잃은 사람에게는 의외로 아무것도 아닌 게 필요한 편이다. 대체로 그렇다. 그냥 좀. 대단하지도 평범하지도 당당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것들을 늘어놓을 데가 필요한 것도 같고. 아마 함께 J의 글을 좋아했던 사람들도 근삿값의 마음이었겠지 감히 짐작해 본다. 음…… 쾌도 고도 지나고 나면 진실만 남는다. 당시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어떤 식으로 나를 좌절시켰는지 뭐 그런 것들은 시간에 밭이며 떨어져 나가고 진실만 남는다. 더 이상 일말의 수식도 연민의 여지도 남아 있지 않은, 단지 아주 정확한 경험의 산물, 모든 게 오로지 나의 것.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이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남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다들 이렇게 살 리가 없다. 추하고 막막하고 화나고 슬픈데도 사랑으로 수렴해 버리는 모순을 어떻게 알지. 이 분노는 절반이 맞고 절반이 틀리다. 알 수야 없겠지만 비슷하게들 산다. 이 사실을 알고 여러 가지를 내려놔야 나아갈 수 있는데 나는 이걸 버리는 일이 꽤 어려웠다. 싸구려 나르시시즘, 무게 없는 가짜 시놉시스, 연극적인 자기 증오. J의 글을 읽을 즈음에서야 마지막 쓰레기봉투를 묶었던 것 같다. 몇 년 간 내게 일어난 변화 전부를 J가 만들어 준 것은 아니다(단 한 사람이 그만한 영향을 끼친다면 오히려 경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명백한 반향이 있었다. 당시 나를 붙잡았던 그 이야기들을 지금은 더 이상 나의 것으로 감각하지 않으나 그 사실이 슬프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여전히 소중하다. 충분히 대변되었기 때문에 졸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건보다는 족적에 가까운 종류라 시간이 지나고 J가 나를, 내가 J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게 되더라도 영원히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아까 보내 둔 DM 지금 읽었어. Q. 변하지 않았음을 감각하게 되는 순간은 정확히 언제일까? 어떤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지? A. 내 생각에는 그 조건이 여전히 궁금할 때.
